https://www.w3schools.com/sql/default.asp 참조 가능

SELECT FROM부터 DELETE까지. 학교 시험 준비용이므로 간략하게 정리한 것. 틀린 부분 있을 수 있음.


SELECT column_C

FROM table_T;

table T 상에서 column C를 추출해 나타낸다. (이 때 column C의 자리에 *를 입력하면 전체 schema를 커버하는 것.)


SELECT DISTINCT column_C

FROM table_T;

table T 상에서 column C를 추출해 나타내되, 중복되는 항목은 한 번만 나타낸다. (예컨대 Customers라는 테이블에 customerName이 Anne이라는 사람이 여러 명 있다고 해도, SELECT DISTINCT customerName FROM Customers를 실행할 경우 Anne이라는 이름은 단 한 번 나오게 된다.)


SELECT COUNT(column_C)

FROM table_T;

column C의 항목이 몇 개 있는지 세어줌. SELECT COUNT(DISTINCT column C) FROM (table T); 등 중복되지 않는 항목들을 셀 때에도 사용 가능하다.


SELECT column_C

FROM table_T

WHERE condition_N;

condition N에 들어맞는 data만을 추출해내는 statement. 이 때 condition문에서 요구되는 조건이 문자일 때는 condition='requiredCondition'과 같은 식으로 '' 안에 필요한 조건이 들어가고(WHERE Name='Anne'), 요구되는 조건이 숫자일 경우에는 ''를 사용하지 않는다(WHERE Age=22). WHERE clause에서는 =, <>(!=), >, <, >=, <=, BETWEEN, LIKE, IN 등이 사용된다.


SELECT column_C

FROM table_T

WHERE [NOT] condition_N1 AND/OR condition_N2;

WHERE clause에서는 AND, OR, NOT의 사용으로 전체 SQL문이나 WHERE문을 간략화할 수 있다. 사용법은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와 같다. 조건 N2나 N3 중 최소한 하나를 만족하는 동시에 N1를 만족하는 결과를 얻고 싶다면 WHERE N1 AND (N2 OR N3) 등으로도 조합이 가능하다.


SELECT column_C

FROM table_T

ORDER BY special_column_S ASC/DESC;

ORDER BY는 결과를 특정 열 S의 값들에 따라 올림차순(ASC) 혹은 내림차순(DESC)으로 정렬할 수 있게 해준다. ORDER BY의 기본 정렬 방식은 ASC이므로, 단순히 한 열의 값에 따라 올림차순으로 정렬하고 싶은 거라면 ASC를 쓰지 않아도 괜찮다. 이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응용이 가능한데, 정렬할 때 필요한 special column S으로 한 개 이상의 열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C1이라는 열로 올림차순 순으로 정렬을 한 뒤, C2라는 열로 내림차순으로 추가 정렬을 하고 싶은 거라면 ORDER BY C1 ASC, C2 DESC;라는 clause를 사용하면 된다.


INSERT INTO table_T (column_C)

VALUES (value_V);

만약 table T의 모든 열에 대한 값을 새로 집어넣으려는 것이라면 (column C) 부분은 생략이 가능하다. 단 이 때는 value V의 순서가 table에 있는 열 순서와 같게 집어넣어야 한다. (열이 Name, Age, University 순일 때 35, 'A University', 'John' 순서로 집어넣으면 눈물이 나온다.)

INSERT를 할 때 전체 열이 아닌 몇몇 열에 대한 값만 집어넣는 경우에는 새로운 행의 나머지 부분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ID, Name, Age, University, Sex 다섯 개의 열로 이루어진 table Students에 1, 'John', 35, 'A University'만을 집어넣었다고 해보자.

INSERT INTO STUDENTS (ID, Name, Age, University)

VALUES (1, 'John', 35, 'A University');

이 때 John의 생물학적 성별은 테이블 상에서는 알 수 없는 값이 된다. 이럴 경우 RDMS는 John의 성별에 NULL이라는 값을 넣는다. (0을 값으로 갖는 경우나 스페이스를 포함하는 필드와는 경우가 다르다. NULL은 기록을 만들 때 정보가 채워지지 않은 부분을 채운다.) NULL에는 WHERE clause에서 사용 가능했던 비교 연산자들을 사용할 수가 없다.


SELECT column_C

FROM table_T

WHERE special_column_S IS [NOT] NULL;

그래서 사용되는 것이 IS NULL, 혹은 IS NOT NULL이다. 이 statement를 통해 특정 열 S의 값이 NULL인, 혹은 NULL이 아닌 값들만 추출이 가능하다.


이제 John의 성별이 남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자. 그리고 A 대학에 다니던 그가 이젠 B 대학에 다니게 되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테이블 상의 있는 A 대학에 다니고 성별을 알 수 없는 John에 대한 기록은 의미가 없어졌다. 업데이트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UPDATE table_T

SET column_C1=value_V1

WHERE condition_N;

John의 기록 중 새로 업데이트할 정보는 Sex와 University이다. 그리고 John만이 갖는 고유한 값은(다른 학생의 정보가 같이 바뀌는 걸 막기 위해) ID이다. 그러므로 John만의 정보를 바꾸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UPDATE Students

SET Sex='Male', University='B University'

WHERE ID=1;

UPDATE를 사용할 때 중요한 것은 WHERE문이다. 만약 WHERE문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학생들이 전부 B 대학을 다니게 되고 남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WHERE clause를 생략해버렸을 경우) 돌이킬 수 없어 눈물이 난다.


그런데 이런... John이 죽었다. 젊은 나이에. 상관없다. 어쨌든 그가 더 이상 학생 신분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Students 테이블은 더 이상 John의 기록을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 죽은 동시에 학생일 수 있는 존재는 없으므로.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사실상 죽은 존재이지만 햇볕에 나가면 반짝이는 몸을 가지고 있는 에드워드는 무시하도록 하자. 학생이었다가 죽은 존재가 된 벨라도.

DELETE FROM table_T

WHERE condition_N;

세상의 모든 John이 죽는 전염병이 돈 것도 아니고, B 대학에 다니며 35살 남성이고 ID가 1인 John만이 죽었으므로 WHERE문의 조건은 다음과 같이 쓰면 된다.

DELETE FROM Students

WHERE ID=1;

이렇게 John은 Students 테이블에서 사라졌다. 그냥 취직해서 사회인이 되었다고 할 걸. 만약 모든 학생들을 삭제하고 싶으면 WHERE문을 깜빡해서 빼먹으면 된다.

※이 글은 제목에 안내된대로 예술사와 철학 사상이라는 교양 강의의 제출용 레포트였으며, 예술과 철학 지식 대신 미셸 공드리에 대한 덕심만이 존재하는 컴퓨터 관련 전공 학부생이 작성한 글입니다. 그만큼 틀린 구석도 많을 것이고, 잘 알고 계시는 분들이 보면 아니 이 고얀 놈 뭐라는 거야 이럴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전 관종이라+티스토리 기능 이것저것 사용해보고 싶어서 올립니다 희희. 그리고 김칫국이지만 혹여나 글을 공유하신다면 말씀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살다 보면 한번쯤은 좋아하는 사람의 행동에 실망할 일이 생긴다. 이런 일을 겪고 나서 그 사람에 대한 의구심과 실망으로 쓰린 가슴을 부여잡고 있노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대체 왜 그랬던 거지? 내가 아는 그 사람은 그럴 짓을 할 사람이 아닌데.’ 그러다 그런 일이 반복되어 관계의 끝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에는 어느덧 그 생각도 바뀌어 있다. ‘, 그냥 내가 사람을 잘못 봤던 모양이야,’ 같은 깨달음으로. 내가 사람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무척 힘들고 괴로운 일이다. 그토록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일 수도 있고, 그런 사람인 줄도 모르고 함께 보낸 시간을 후회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어느 쪽이었든 간에 그리 행복하지 않은 방식으로 인간 관계를 끝마칠 경우 뒤따라오는 고통이 분명 그 사람을 오해했다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그런 고통을 꾸역꾸역 감내하고 있노라면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차라리 같이 지냈던 기억과 시간을 지워버리고 아예 없었던 일로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되면 다시는 이런 관계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터널 선샤인>은 남주인공 조엘이 침대에서 눈을 뜨고, 출근하던 중 이유 없어 보이는 충동으로 일터로 향하는 열차 대신 몬토크행 열차로 갈아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몬토크에 도착한 조엘은 해변에서 그림을 그리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등 시간을 보낸 후 돌아가는 열차에 타는데, 그곳에서 그는 몬토크를 돌아다니는 내내 몇 번 마주쳤던 클레멘타인이라는 여자와 통성명을 한다. 이후 둘은 데이트를 하는 등 자연스럽고 즐거운 관계를 이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겨울 호수에 다녀와 클레멘타인을 집에 데려다 준 직후, 운전석의 창문을 두드린 어떤 남자와 대화를 나눈 조엘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미 클레멘타인과 사귄 적이 있는, 클레멘타인이 자신과 싸운 끝에 저를 정말 기억에서 지우기까지 했다는 것을 알고 첫 문단의 과정을 거쳐 클레멘타인을 미워하게 된 조엘이, 첫 장면의 전날 밤부터 꿈 속을 유영하며 기억 속 지워져 가는 클레멘타인을 만나는 이야기가.

 

클레멘타인을 지우기 위해 잠에 든 조엘은 라쿠나 사의 기억 제거 장치가 기억 속의 클레멘타인을 찾아내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기억 속 클레멘타인과 마주하게 된다. 클레멘타인과 헤어지기 직전부터 시간을 거슬러가며, 조엘은 잊고 있었던 추억을 하나씩 돌이켜보게 되고 결국 이 기억만은 남겨달라 애원하기도 한다. 그 직후, 조엘은 클레멘타인을 지우려는 기억 제거 장치에 저항하며 기억 속 클레멘타인의 손을 잡고 클레멘타인이 지워지지 않도록 기억 이 곳 저 곳에 숨는다.

 

이 때 클레멘타인이 하는 대사는 사실 라쿠나 사와 기억 제거 장치와 유사한, 우리의 기억을 수면 아래로 밀어 넣으려 드는 존재가 무엇인지를 암시한다. ‘수치스런 기억에 날 숨겨!’ 조엘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다 어린 시절 자위를 하다 어머니에게 들킨 기억 속으로 클레멘타인과 숨는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기초하든 사회적인 기준에 기초하든 간에 공개적인 자위 행위는 개인의 성적 충동이자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일이다. 그런 기억을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잊어야 할 기억으로 만들어 잊어버리게끔 하는 것은 초자아의 역할이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말했듯 초자아가 숨기고 억압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현재의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꿈 속에서 과거의 기억 속으로 뛰어들었던 것처럼 무의식의 일부가 되고 계속 쌓이는 기억과 합쳐지고 나뉘는 과정을 통해 왜곡된다.

 

영화 속 이미지들로 다시 돌아오자. 무의식이 유일하게 자유를 허락 받는 장인 꿈 속에서 기억 제거를 피해 도망치며 조엘과 클레멘타인, 그리고 관객들은 기괴하거나 낯선 형상들과 마주하게 된다.

 

같은 장면들이 그것이다. 영화를 보며 조엘의 꿈을 따라가던 관객은 그런 배치나 시각적 환상을 유도하는 구도에서 이런 장면들이 영화 내에서조차 현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불안감이나 묘한 두려움, 혹은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된다. 이러한 낯선 장면들은 마지막 남은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기 직전까지 이어진다. 처음 만났던 날 밤, 해변가의 한 저택에 클레멘타인과 숨어 들었던 기억에까지 도달한 조엘은 서서히 무너지며 모래 속으로 묻혀가는 저택 안에서 클레멘타인과 잠시 시간을 보내다 그 자신이 결국 불안감과 두려움에 먼저 저택을 떠났던 것을 기억하고, 자신이 온전히 기억할 수 있는 마지막 클레멘타인과 작별 인사를 한다. 그리고 클레멘타인은 자신을 잊고 깨어날 조엘에게 이렇게 말한다. 몬토크에서 만나자고. 꿈 속의 조엘은 현실에서 그 날 타고 돌아왔던 차를 탄 채 집으로 가며 남아있던 클레멘타인의 흔적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클레멘타인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잊은 채 잠에서 깨어난다.

 

여기까지만 보면, 우리는 지금까지의 주된 내용인 꿈 속의 도피로부터 초현실주의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이는 전적으로 미셸 공드리 감독의 미장센 덕으로, 감독은 꿈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 초현실주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의식의 수동적 기법, 특히 데페이즈망 기법을 사용해 꿈의 환상성을 나타낸 바가 있다. 이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사실주의적인 영상과 어우러져 꿈 속 공간의 초현실적 특징을 더욱 강조한다. 예컨대 서점의 서가에 꽂힌 책들의 제목이 전부 사라지고 획일화된 이미지를 갖는 장면을 삽입해 우리가 평소에 관심이 없는 이상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그러나 당연하게는 여겼던 책의 구성 요소와 그 것의 도구성을 지워 관객 대부분이 익숙하게 느낄 공간인 서점을 낯설게 느껴지도록 연출하는 식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조엘의 꿈 속에서 클레멘타인이 일하던 서점을 배경으로 한 장면 중에는 뒤통수밖에 없는 인물의 등장으로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있기도 하다.)

 

△ 이터널 선샤인의 꿈 속 책 가게 장면과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

 

이와 같이 일상적인 사물들이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배치된 장면들에서 우리는 조엘의 어린 시절을 엿보기도 하고, 그의 초자아가 억압해온 기억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클레멘타인과 헤어져 그를 잊겠다고 결심하고, 끝내 기억 속의 그를 상실하는 것까지 자발적으로 동의했던 조엘이 기억 속에서 클레멘타인과 재회해 익숙한 기억들을 통해 기억을 아예 삭제함으로써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상실의 트라우마를 오히려 마주한 셈이 되었다는 것에서 프로이트가 말한 언캐니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렇게 꿈 속의 상징과 왜곡들이 자아내는 발작적인 아름다움과 객관적 우연을 즐기며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위에서 언급했던 꿈 속에서의 마지막 장면이 나온다. 이 때 공간적 배경으로 기능하는 무너져가는 저택의 잔재는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기본 원리를 잘 드러내고 있다. 폐허가 된 저택은 발작적 아름다움의 경이를 내재함으로써 현실과 꿈 모두에서 클레멘타인과 조엘의 관계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장치로 기능하는 동시에 객관적 우연에서의 경이 또한 내재해 오래 전 클레멘타인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자 오브제 자체로서도 기능하기 때문이다. 잃어버릴 관계와 기억에 대한 불안감은 그렇게 관계의 멜랑콜리함과 관계를 향한 노스텔지어와 연관된 오브제로 드러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만다.

 


 

꿈 속의 장면까지만 해도 <이터널 선샤인>은 충분히 좋은 영화이지만, 이 영화의 진가는 조엘이 기억을 지운 채 잠에서 깨어나는 장면 이후 드러난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현실에서 기억을 지우기 전의 자신들이 상대를 향해 늘어놓았던 험담을 듣게 되고, 번민한다. 결국 참지 못한 클레멘타인은 조엘이 저를 향해 했던 험담을 듣다 조엘의 집을 떠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달려나가 클레멘타인을 잡고, 자신의 결점을 털어놓는 클레멘타인에게 그래도 상관 없다고 말한다. 이는 앞으로 같이 새로운 기억을 쌓고 싶다는 의미이자, 설령 이전과 같은 이유로 같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해도 지금은 클레멘타인과의 관계를 택하겠다는 의사의 표현이다. 현실에서 관계와 기억이 갖는 중요성을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부분에서 볼 수 있듯이 <이터널 선샤인>은 초현실주의를 담아내면서도 사진과 같은 영상매체만이 지니는 특수한 기능을 놓치지 않는다. 꿈 속에서 기억을 되짚어가는 부분은, 그 기억들을 삭제하기 위해서라고는 하나 조엘이 실제로 지각한 것을 보여줌으로써 빛을 매개로 그가 본 대상과 물리적으로 연결된, 의식의 세계 속 지표들을 짚어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조엘이 기억을 지우기 전 사진, 그림, 글 등으로 기록한 클레멘타인의 관계로 클레멘타인의 호감을 얻어내는 패트릭의 모습은 관객으로서 사진에 접근해 타인이 그런 사진 속 장면으로부터 얻었을 법한 푼크툼을 자극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기억을 지우기 전 조엘과 했던 일과 갔던 장소의 충격은 아무리 클레멘타인이 기억을 지웠다고는 하나 의식 저변에 상처로 남아 인간 관계에서의 미적인 체험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장치가 되는 탓이다. 물론 이 작품부터가 사랑으로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는 관객의 푼크툼을 유달리 자극하는 동시에 관객이 참여할 여백을 남겨 두고 있기도 하다. 모 영화 사이트에서 많은 공감을 얻었던 평이 말하듯, ‘이 영화는 경험의 조각을 남겨둔 영화이며, 각자가 자신의 경험을 맞춰 완성시킬 때 완벽한 영화가 된다.’

 

첫 문단으로 돌아가,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고 지낸다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의 일부, 혹은 재현을 그 사람의 본질이라고 믿고 그것에 맞춰 행동하는 것과 같다고 해석할 수가 있다. 이 때 그 사람은 라캉이 말한 상상계 속의 타자와 같다. 진정한 타자도, 소유의 대상도 아닌 그저 그를 보는 주체,  의 개인적인 격자로만 이해한 대상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결국 의 시선에 분열되어 라는 캔버스에 투사된 왜곡된 이미지와 같다. 마지막 장면에 다다라 저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조엘의 인터뷰 테잎을 듣던 클레멘타인이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며 그렇기에 그 말들이 정말 아프게 와 닿는다고 말하는 장면이나, 기억을 잃기 전 조엘이 했던 말 중 그녀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전혀 몰랐던 거에요. 오래된 관계의 단점은 상대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 된다는 거죠.’라는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듯 말이다.

 

라캉은 우리가 맺는 인간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진 모든 지식이 사실 그러한 재현을 통해 허구에 기초할 수밖에 없음을 주장했다. 그렇게 보자면 인간 관계에서, 혹은 일상 생활에서 상대나 사물에 대한 실망감과 허무감을 갖는 것은 필연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사물의 존재 자체가 불안감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이해한 대상만을 보기에 그런 사실을 놓치고 살아가고는 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우리의 대타자와 소타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놓친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상실한 대상 a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클레멘타인은 조엘의 행동을 따라 하며 자신의 취향과 기호를 전부 맞춰주는 패트릭과 사귀면서도 무슨 일이 있냐는 패트릭의 질문에 울며 말한다. “모르겠어! 잃어버렸어. 무서워. 내가 소멸되는 느낌이야. 피부가 벗겨지고 늙어가!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클레멘타인은 기억을 이미 지웠으므로, 혹은 애초에 대타자와 소타자가 일치하지 않으므로 투케를 겪고, 그로 트라우마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그 것은 클레멘타인의 공격성이 그 자신을 향하게끔 한다. 허위적이고 왜곡된 자기 의식 탓에 거울 속 타자화된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불안해하고 적대감마저 느끼는 것이다. 조엘 역시 마찬가지이다. 영화 속 주 내용인 꿈 속에서, 조엘은 자신이 클레멘타인을 지우길 원한다고 믿고 그것을 꿈 속 클레멘타인에게 자랑하듯 말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사실 조엘은 클레멘타인의 행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자신도 기억을 지우고 보란 듯이 잘 사는 것과 같은 대타자를 지니면서도 그가 의식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면 낯설게 여겼을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간직하는 것과 같은 소타자 역시 지니고 있다. 기억을 뇌의 기억 회로에서 들어낼수록 그러한 소타자는 점점 강렬해지지만 그것이 대타자와 소타자의 화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미 조엘은 대타자를 따라가는 선택을 한 뒤이기 때문이다. 그 탓에 기억을 전부 지우고 깨어난 조엘은 몬토크의 해변가에서 서성이는 클레멘타인을 보고서도 기억과 관계를 포기하기로 한 이전의 대타자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소타자를 지니고, ‘저 여자와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도 있을 텐데와 같은 내적 갈등에 빠진다.

 

감독은 그러한 불안감과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인간 관계에서의 희망에 대해 말한다. 조엘은 평소의 소심한 성격대로라면 드러내기는커녕 떠올리는 것조차 꺼렸을, 어머니에게 관심을 받지 못한다 느꼈던 자신의 깊은 유년기 기억에 단지 클레멘타인을 숨기기 위해서 기꺼이 뛰어든다. 그런 조엘이 가장 간절하게 남겨달라 간청하는 기억은 언젠가 클레멘타인이 어릴 적 그 자신의 외모에 대해 가졌던 콤플렉스를 털어놓고 아직 그것을 트라우마로 지니고 있다 암시하는 부분이다.

 

 

또한 조엘은 그 둘이 싸우는 원인이 되었을 각자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하는 클레멘타인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긍정한다. 관계가 권태로워진 끝에 끝날 이유가 얼마든 존재하며, 그것이 각자가 해석한 상대와 실재 간 괴리로 인해 나와 제거할 수조차 없는 요소임을 알면서도 사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 이후 감독은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서로를 가장 사랑했던 때의 파편적인 기억을 발췌해 반복하는 결말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시도할 가치는 분명 존재한다는 의견을 견지한다. 그의 다른 작품 중 <무드 인디고>의 메인 배경음악의 제목처럼, ‘Mais, aime la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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